빛으로 컴퓨팅의 미래를 그리다 – 속도 100배 빠른 광소자의 개발과 광컴퓨터의 가능성
미래 컴퓨팅의 패러다임을 바꿀 신기술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양자컴퓨터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초고속 컴퓨터인 ‘광컴퓨터’가 주인공입니다. 최근, 빛을 이용하여 정보 처리 속도와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광소자 칩’이 개발되며 광컴퓨터 상용화의 가능성을 한 단계 더 앞당겼습니다.
광컴퓨터란 빛(light)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초고속, 초대용량 컴퓨터를 말합니다. 이는 기존의 전기 신호를 사용하던 전통적인 컴퓨터와 달리, 빛의 빠른 이동 특성과 높은 대역폭을 활용함으로써 연산 속도와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차세대 기술입니다. 기존 시스템들이 직면하고 있는 처리 속도와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컴퓨터는 미래 컴퓨팅 기술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혁신의 중심에는 최근 두 기업이 발표한 광소자 칩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활용한 광소자 칩의 개발
2023년 10월 10일, 두 명망 높은 기업이 이룩한 연구 성과가 공개되었습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라이트매터(Lightmatter)’와 미국 기반의 ‘라이텔리전스(Lightelligence)’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광소자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기술을 활용해 광소자 칩을 개발했으며, 기존의 고전적인 광학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놀랍도록 혁신적이고 정밀한 방식으로 광소자를 반도체 칩 위에 집적했습니다.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은 ‘빛으로 작동하는 회로’를 반도체 내에 구현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기존 광학 장비(렌즈, 거울 등)를 대체하는 대신,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제작 공정을 활용해 칩 내부에서 빛을 사용한 데이터 연산과 처리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특정 연산 작업에서 기존 전자 회로에 비해 속도가 100배 이상 빨라졌습니다.
라이텔리전스: 엔비디아 GPU보다 500배 빠른 최소 지연 시간
라이텔리전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광컴퓨팅 장치가 현재 GPU 기반의 고성능 컴퓨터를 압도하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A10과 비교했을 때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GPU A10의 최소 지연 시간은 2300ns(나노초, 1ns = 10억 분의 1초)입니다. 이는 데이터를 주고받는 데 걸리는 가장 작은 시간으로 컴퓨터의 연산 성능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그러나 라이텔리전스의 광컴퓨팅 장치는 이 최소 지연 시간을 단 5ns로 단축하며 무려 500배 빠른 속도를 구현했습니다. 이는 연산 속도 뿐만 아니라 데이터 처리 효율성에서 전통적인 컴퓨팅 기술을 크게 능가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라이트매터: 초고속 행렬 연산과 AI 모델 구현의 가능성
또 다른 기업인 라이트매터는 광소자 칩을 통해 엄청난 연산 속도를 보여주며 기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들은 128×128 크기의 행렬 연산이 가능한 광소자 칩을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빛이 한 번 깜빡이는 순간 동안 무려 1만 6384번의 MAC(Multiply-Accumulate) 연산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MAC 연산은 인공지능(AI) 모델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연산 방식으로, AI 딥러닝 모델의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라이트매터 연구팀은 개발한 칩을 실제 장치에 적용해 AI 모델을 운영하며 기존 고전적인 컴퓨터 대비 탁월한 효율성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광컴퓨터가 단순히 이론상 빠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응용 분야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광컴퓨터가 가져올 새로운 시대
이번 연구는 단순히 광소자가 기존 전자 시스템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차세대 컴퓨팅 기술로서 광컴퓨터가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더 빠른 속도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기반의 기존 전자 시스템은 물리적 한계와 발열 문제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개발된 광컴퓨터와 광소자 기술은 우리의 디지털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AI와 머신러닝 같은 고성능 모델의 연산 속도가 중요한 분야에서, 광컴퓨터는 경쟁 상대가 없는 만큼 강력한 성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에 발표된 라이텔리전스와 라이트매터의 연구 결과는 이를 실현하는 데 커다란 발판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광컴퓨터 기술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번 광소자 칩의 혁신은 그 상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빛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함으로써 기존 시스템이 도달할 수 없는 속도와 처리력을 현실화시키는 기술, 즉 광컴퓨터는 미래 디지털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일상에 점차 AI, 빅데이터, 클라우드와 같은 기술이 자리 잡아가는 현실 속에서, 광컴퓨터가 가져올 혁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빛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라는 말은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곧 마주하게 될 실질적인 변화가 될 것입니다.
한편, 앞으로의 과학기술 발전은 이 광소자 기술이 더 나아가 양자컴퓨터와 같은 혁신 기술들과 어떻게 융합될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빛의 속도를 활용한 차세대 컴퓨팅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출처: 동아일보 원문 기사 보기